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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비 부담으로 지난 5월 목욕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여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목욕탕은 전기, 가스 등 연료비 부담이 큰 소상공인 업종으로 요금의 인상으로 인해 소비자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찜질방과 PC방 등 에너지비 부담이 큰 업종 이용료도 크게 올랐다. 지난달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목욕료는 1년 전보다 14% 선을 상승하며 가장 높은 기록을 보였다. 전기 수요가 큰 PC방 찜질방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상으로 인해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이에 소상공인 단체는 에너지 취약계층에 소상공인을 포함해 에너지 지원을 법제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역사
한국의 경우 박혁거세 신화나 김알지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알에서 태어난 이들을 냇가에서 씻기자 비로소 광채가 났다고 하여 오래전부터 종교적인 의미를 포함해 씻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으며, 불교가 전래한 이후 불교식 목욕재계(沐浴齋戒) 개념과 더불어 몸을 청결히 했다는 기록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경주 안압지에서는 신라시대의 목욕탕으로 추정되는 터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기도 했으며, 삼국유사에는 683년에 신라의 재상이 동래온천에 입욕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역시 불교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몸을 자주 씻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정방이라 하여 실내에 목욕소를 두었다. 현대에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절에 목욕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자주 다니는 절에서 씻었다. 숭유억불로 인해 목욕 문화가 쇠퇴했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때 당시의 위생 요소들을 볼 때 한국의 목욕 문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최선진국 문화에 속한다. 왕실이나 민간에서 한국 내의 온천지로 온천욕을 다녀오는 일은 자주 있었으며 온양에는 행궁을 설치했을 정도이다. 당시 온천욕은 휴식의 의미도 있었지만 대개 의료적인 측면이 컸다. 1617년 정구(鄭逑)가 남긴 봉산욕행록(蓬山浴行錄)을 보면 당시 동래 온양 온천의 온정원(溫井院)을 찾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당시에도 이미 온양 온천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수차례 개축하였으며 이는 1766년 부산 온양 온천에 세운 온정개건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온정개건비 앞에 있는 석조(石槽)는 현존하는 조선 당시의 욕조 유물이다. 봉산욕행록 등 당시 기록을 보면 나무 욕조도 같이 쓴 듯하다. 고려시대까지는 옷을 벗고 씻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서 목욕용 옷을 따로 입고 씻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피부에 좋다며 남아를 복숭아 꽃물에 씻긴 기록이나 쌀겨, 조두 등을 비누처럼 거품을 내어 사용한 기록이나 수세미로 만든 일종의 목욕용 기구들과 전하는 이름들을 볼 때 어느 정도 목욕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대의 찜질방과 비슷한 유형인 한증막이 존재했으며 글과 그림으로 많이 묘사된 탁족이나 신윤복의 단오풍정 등을 볼 때 정형화된 욕탕보다는 개울이나 강가 등 노천에서 씻는 행위를 즐긴 경우도 많은 듯하다. 1905년 서울 서린동에서 한국 최초의 대중목욕탕이 문을 열었는데, 모르는 사람끼리 발가벗고 목욕을 한다는 것에 익숙지 않은 문화라서 곧 문을 닫고 말았다고 한다.
우리 선조의 목욕문화 - 문화재청.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목욕탕 문화가 유입되기도 해서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일본인이 많이 정착한 부산의 경우 1909년에 부산 시가지에서 온천이 있는 동래까지 부산전차를 만들어 온천 셔틀로 돌리기도 했다. 1924년 평양에, 1925년 서울에 대중목욕탕이 들어섰지만 당시 사람들은 공중목욕탕을 두고 "어찌 남에게 맨몸을 보여주나"하고 거부 반응을 보여 정착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고 한다. 이렇게 목욕 풍습은 계속 이어졌고 대중목욕탕 또한 이태리타월과 목욕관리사도 생겨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식 목욕탕이 만들어졌으며 1990년대 중후반에 찜질방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대다수가 찜질방과 겸업하고 있다. 기사. 찜질방이 없어도 어지간히 작은 사이즈가 아닌 이상 이발소가 같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찜질방을 겸하는 업소라도 대개 목욕탕 시설 안에 찜질을 위한 작은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 대다수다.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도 목욕탕과 비슷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대중목욕탕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 풍경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어느 동남아 남성은 한국의 목욕탕에서 모든 남성들이 나체로 있는 모습을 보고 컬처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자국의 목욕탕에서는 같은 남탕이라도 팬티는 입고 목욕했다고 한다. 사실 이건 제법 많은 나라들이 그런다. 유럽과 아랍, 북아프리카를 다니며 신혼여행을 1년에 걸쳐 다닌 이우일, 선현경 내외도 유럽이나 아랍 목욕탕에서 팬티를 입고 다니는 탓에 이우일은 현지 목욕탕에서 훌러덩 벗고 들어갔다가 다들 어이없게 쳐다봤다는 일화가 나온다. 1999년 2000 시드니 올림픽 축구 예선전 한국 원정 경기를 하러 온 바레인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도 팬티를 입고 목욕했던 일화가 있다. 그리고 한국 내 거주 미국인 한 명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목욕탕에 들어갔다 남자들이 다 벗은 걸 보고 게이 사우나로 착각해 남중생을 성추행하다 불구속 입건을 당한 적이 있다. 참고로 목욕탕에서 일본은 수건을 두르는 편이고 중국은 두르지 않는 추세고 튀르키예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팬티나 바지를 입고 들어간다. 일본 위키피디아의 한국 '찜질방' 항목에서는 한국의 목욕 문화를 같이 설명하며 수건으로 가리지 않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 있으니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유독 새해 1월 1일이 되면 붐비는 곳이기도 한데 지난해의 낡은 때를 벗겨내고 새해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문에 1월은 목욕탕의 최고 성수기이기도 하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피해를 가장 크게 보고 있는 업소 중 하나다. 아무래도 비말차단 장비 없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물로 알몸 상태로 목욕을 한다는 질병 감염 최적의 조건이다 보니 자연스레 기피하게 되었다. 방역을 강화한 다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틈을 타 2021년 말부터 혼목을 하는 1인 세신샵이 열리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방역 규제가 풀려 업체의 회복을 기대했지만, 금리상승과 난방비 폭등으로 인해 코로나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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